대한민국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일제 강점기 1편

일제강점기는 1910년 8월 29일 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로 지배를 받았던 기간은 약 35년이며 1910년에 일본의 왕명을 받아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식민통치를 하였습니다. 또한 외교 및 정치에 대한 권한은 조선이 아닌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민통치 시기에 통치 정책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1910년~1919년까지 민족 학살 정책 1919년~1931년과 1931년~1945년 민족말살 정책으로 분류가 됩니다. 8월 15일 일본의 패배로 인해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철수하지 않았으며, 9월 2일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고 나서야  9월 28일 완전히 철수를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배경

일본은 산업화가 되면서 자본주의의 가장  큰문제인 공급과잉으로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섬나라의 특성상 시장  개척의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신민지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쳐서 기존에 막부가 종식되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체제가 되었으며, 개방을 통하여 많은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빠른 발전과 산업화가 되었습니다.

기존에 다른 열강들이 식민지를 통치했던 것과 비슷하게 일본도 같은 방법으로 조선을 식민지화 시켰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수교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조선을 식민지화하자는 명분을 가지고 진출을 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흥성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조정의 권력 다툼으로 명성황후는 개화 파인 친일을 지지하였지만 추후 청나라의 병력을 이용하여 실권을 잡으려고 하는 친일 인사들을 탄압하였습니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명성황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였습니다.

1876년에 강화도 조약 이후에 많은 사건이 벌어졌으며, 일본은 청일전쟁과 1905년에는 러일전쟁의 승리로 한반도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였습니다. 또한 이때 일진회 그리고 이완용이 일본과의 한일합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09년 7월 대한 제국의 흡수를  일본에서 결정을 내렸고, 10월 26일에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암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하여 일본은 대한 제국과의 합병을 더 가속화되었습니다.  이듬해 8월에 한일 합병 조약이 체결되면서 이때부터 일본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35년간 식민통치를 받으며 많은 국민들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한일합병 초반 (1910년 ~1919년) 무단통치기로 불림

1910년 9월 총독부는 무단 통치가 시작되었고, 헌병 경찰을 도입하여 즉결 처분권을 주었습니다. 또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출판,집회 또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총독부에 임명이된 총독은 모든 권한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법은 물론이고 사법 및 행정권까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 총독부 산하에 장장 2만명이나 되는 헌병들을 배치 하였으며, 이를 도운 조선인 보조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헌병들의 주업무는 억압과 치안을 담당하였고 특히나 독립운동가의 색출이 주업무였습니다.

산업,토지 수탈과 사업 제한으로 성장을 억제하며, 일본의 기업이나 이민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일본 기업이나 시민들에게 많은 혜택이 있다보니 해방되기 얼마전에는 일본인 이주자가 40만명에 육박 하였습니다.

한일 합병 중반 (1919년 ~ 1931년) 문화 통치 시기로 불림

3.1운동으로 인하여 기존에 무단통치의 한계를 느낀 일본은 기존에 통치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에 다른 총독이 부임하면서, 강압적인 것보다 회유하는 방법으로 통치 스타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일 합병 초반에 억압되었던 언론이나 집회 그리고 교육에 대한 활동이 허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겉모습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총독부의 방향

  • 많은 모임들 종교나 교육계에 침투하여 친을 단체를 조직하고 친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지위를 주게 되었습니다.
  • 원조와 편의를 제공하여 많은 친일인사들을 만든다.
  • 당시 주산업이었던 농민들에게 혜택을 주면서 친을 단체에 가입하도록 회유함
  • 헌병 제도를 경찰 제로 바꾸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의 억압은 더 심해졌습니다.

한일 합병 후반 (1931년 ~ 1945년) 민족 말살 통치 시기

일본의 야망은 계속되었던 시기 1931년에 중국 침략을 본격적으로 진행한 시기였습니다. 1937년 중일 전쟁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침략전쟁을 하였으며, 1940년에 태평양전쟁까지 많은 군인들을 일본에서 착취해 갔습니다. 또한 한국의 여성들을 정신대라는 이름하에 강제로 동원했으며,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한 사과가 정확히 이루어 지공 있지 않았습니다.

민족 말살정책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으로 신사참배 창씨개명 등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역사나 글 말을 배울 수 없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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